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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유용할 팁

알쓸신잡 - 아파트 층수에 4층이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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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다 보면 한 가지 묘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1층, 2층, 3층 다음에 바로 5층이 표시되어 있거나, ‘4F’ 대신 ‘F’나 ‘3A’로 적혀 있는 경우다. 처음에는 단순한 표기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아파트에서 4층을 피하는 데에는 오랜 문화적 배경과 현실적인 이유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는 바로 ‘숫자 4’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숫자 4는 꺼려지는 숫자로 여겨진다. 한자 ‘사(四)’의 발음이 ‘죽을 사(死)’와 같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병원, 호텔, 아파트 등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공간에서는 4라는 숫자를 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특히 주거 공간인 아파트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미신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실제로 분양 시장에서 4층이나 14층을 꺼리는 수요가 존재한다. 같은 구조, 같은 가격이라도 ‘4’가 들어간 층수는 선호도가 낮아지고, 이는 분양 속도나 중고 거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굳이 논란이 될 요소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처음 설계 단계부터 4층 표기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점은 층수가 사라졌다고 해서 실제 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층이지만, 단지 숫자 표기만 바뀐 것이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3층 다음이 5층으로 표시되지만, 실제 높이는 다른 층과 동일하다. 일부 건물에서는 4층을 ‘F층’이나 ‘3A층’으로 표기해 심리적 거부감을 줄이기도 한다.

 

이러한 숫자 회피 문화는 우리나라만의 특징은 아니다. 서양에서는 숫자 13을 불길하게 여겨 호텔이나 빌딩에서 13층을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동양의 4층 회피와 서양의 13층 회피는 문화는 달라도, 사람들이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공간 설계에까지 반영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관행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신보다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과, 외국인 거주자나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혼란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일부 신축 건물에서는 4층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아파트에서는 ‘4 없는 층수’가 관행처럼 유지되고 있다.

 

결국 아파트에서 4층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숫자 하나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인식과 시장 논리, 그리고 주거 공간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함께 고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사라진 숫자 4는, 우리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문화와 믿음을 일상 속 공간에 반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단서다. 다음에 엘리베이터를 탈 때, 사라진 4층을 발견한다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한 번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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